회상

Chuck Mangione - Children of Sanchez

river lover 2009. 7. 9. 09:28

 

 

 

 

 

  2006.06.19 09:22

 

 

 

 

 

                       

 

 

산체스의 아이들(The Children Of Sanchez)

 

 
 
 
제작년도

1978년

감     독 홀 바틀렛 (Hall Bartlett)

출     연

안소니 퀸,돌로레스 델 리오,카티 후라도,루피타 퍼러,스타디스 지알렐리스, 세르지오 칼데론,멜라니 파라,카르멘 몬테호,루치아 멘데즈

 

제 작 사 Carmarel Enterprises, Hall Bartlett Productions / Hall Bartlett
음     악

Chuck Mangione (척 맨지온)

원     작 The Children Of Sanchez (Oscar Lewis의 소설) 1978
 
 
 

 

<영화 소개>

 

 

영화『산체스의 아이들(Children of Sanchez)은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의 실화에 바탕한 동명소설을 '홀 베트렛'(Hall Barttlet) 감독이 영화화 한 작품이다. 멕시코 서민의 삶을 진지하게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멜라니 파라(Melanie Farra)'라는 새로운 여배우를 소개하며, 우리가 잘 아는 멕시코계 혼혈인 명배우 '안소니 퀸(Anthony Quinn)'을 등장시키고 있다. 다소 어색한 말투이지만 장녀 콘수엘로 역의 '멜라니 파라(Melanie Farra)'의 진지한 연기와 아버지 안소니 퀸의 원숙한 열연이 단연 돋보이는 영화이다.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성장한 산체스 家 아이들은 멕시코 시티의 슬럼가 어두운 단칸 골방에서 삶에 지친 아버지와 만삭인 아내, 조카들, 유모, 처형까지 뒤섞인 채로 함께 생활한다. 우리네 생활의 모습이 그랬던 것처럼, 혹은 지금도 그러한 곳이 있는 것처럼, 영화의 카메라는 60년대 말 멕시코 시티의 한 구석, 삶의 무게가 절대로 가벼울 수 없는 그들 일상의 진한 아픔 속으로 파고든다.


산체스 家의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가난과 방황 속에서 막막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무관심으로 밖에 비치치 않는 아버지는 여전히 권위만을 앞세운채 시내 도처에 또 다른 자식과 아내를 두고 살아간다. 이러한 그를 콘수엘로는 용납할 수가 없어 급기야는 집을 나가고 여자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보려 애를 쓰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는다. 콘수엘로의 외할머니는 경직된 그녀에게 남자와의 사랑에서 여자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랑을 찾으라고 하지만, 그녀에겐 그것만이 인생의 돌파구는 될 수 없었다. 그녀가 만난 남자 역시 처자식을 숨겨온 유부남이었고, 그런 그를 콘수엘로는 역시 용납할 수 가 없었다. 이제껏 그녀가 처한 현실은 너무나도 떨쳐버리고 싶은 것이었으며, 그것으로 하여금 그녀가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욕망과 스스로의 독립심, 자의식이 강한 성격으로 키워냈는지도 모른다. 콘수엘로는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아버지의 모습에서 가슴 뭉클함을 느낀다. 등을 돌리고 떠나간 자식이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딸을 위해 먼길을 달려온 것이다.
아버지는 복권에 당첨이 되고, 모든 아이들의 안식처였던 외할머니는 눈을 감는다. 아버지는 땅을 사서 그들만이 살 새로운 집을 혼자서 짓기 시작한다. 이젠 행복하게들 잘 지낼까 하지만, 또다시 콘수엘로는 아버지와의 다툼으로 집을 나가고, 스튜어디스의
꿈을 위해 심야의 술집, 속옷 차림의 웨이트레스와 승무원 학원생활을 강행한다. 어느날 술집에서 일하는 콘수엘로를 또다시 찾아온 아버지는 그런 차림의 그녀를 창녀로 치부하며 등을 돌리고 만다. 그 후로 콘수엘로는 심한 괴로움에 시달린다. 드디어 아버지는 새집을 다 짓고 식구들을 불러 모은다. 아버지는 노숙생활을 하던 마누엘을 데려오고, 두 딸의 미혼모인 그의 차녀 마르타와 그녀의 새로운 남자와 함께 짐을 싣고 이사를 한다. 삼촌과 숙모, 이사하는 날 창녀 출신의 여자를 아내로 데려온 로베르또와 그녀의 부모 등 온 식구들이 모두 모여 파티를 하고 즐겁게 음식을 먹지만, 갑자기 스튜어디스가 되어 나타난 콘수엘로는 아버지에게 자식들에 대한 사랑도 없는 무관심과 이기만 있다고 말하며 심한 욕설만 내뱉고는 돌아간다.아버지는 새로 지은 집의 콘수엘로를 위한 방을 바라보고는, 산 위에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밤이 늦도록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 다시 돌아온 콘수엘로는 '용서해 주세요'라고 흐느끼며 아버지의 품에서 부대낀다.


부모에게 자식들은 언제나 치기스런 어린 아이이며, 늘 보채고 불만만 가득 품는 어린애일 뿐인 것일까? '자식을 낳아보기 전에는 절대로 부모의 그 애틋한 사랑을 알 수가 없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 새삼 새롭게 들려온다. 언제나 무관심으로만 치부했던 아버지에게 그들은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목 또한 '산체스가 사람들'이 아니라 '산체스의 아이들'이라고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들의 아버지는 한마디의 따뜻한 말도 없었으며, 그들을 위해 어떠한 물질적 풍요 또한 가져다주질 못했다.

그들의 아버지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조용히 그들의 삶을 인도하고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언제나 그들을 아스라히 조용한 눈길로 내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물밀 듯 밀려오는 죄책감으로, 때로는 가슴이 저미어 오는 안타까움과 함께 말이다.
허나, 영화의 초점은 '가족들간의 사랑'에 있다고 보기에 힘들다. 멕시코 서민들의 삶과 고달픈 현실의 단면과 애환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단지 이 영화는, 그들의 힘겨운 삶의 모습에서 소중하게 확인되는 가족간의 사랑은 더욱 더 고귀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Children Of Sanchez"앨범 중에 Children Of Sanchez Overture

 

"산체스의 어린이들 (Children Of Sanchez)"은 전형적인 사운드 트랙 앨범이 아닙니다. 이 앨범은 오스카 루이스의 자서전을 홀 벨트레트가 영화화한 것으로 내 자신이 23½시간동안 연주되도록 작곡하여 발췌한 것입니다. 이 작품들을 작곡하고 작사한다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의 삶을 가장 강렬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읍니다. 이 음악들은 내 자신으로부터 나온 가장 강한 작품이며, 이 작품들이 앨범속에 담기게 되어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만 합니다. - Chuck Mangione -


척크 맨지온이 "산체스의 어린이들" 앨범을 위해 작곡을 시작한 것은 "Feels So Good"이 나온 직후이라고 한다. 당시 여름 동안 긴 순회 연주로 매우 지쳐 있었고, 새로운 음악 활동을 위해 자신의 4중주단을 이미 구성하고 있었을 때였으므로 무척 바쁠 때였다. 그러나 이 영화음악을 위해서는 3개월이라는 시간밖에 없었고 많은 음악이 필요 했다고한다. 이 사운드 트랙은 24트랙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23½시간용의 음악이 작곡되었으나, 그중에서 서로의 의견을 모아 5시간으로 요약하였다.

Children Of Sanchez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의 대표작으로 홀 베트레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그리고 앨범 "Children Of Sanchez"는 사운드 트랙의 모든 곡은 물론 더 많은 작품을 담고 있으며 1978년 그래미상을 수상하였고, 골든그로브상의 음악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전세계적인 성공을 가져다 준 레코드다.

척크 맨지온은 1940년 뉴욕의 로체스터에서 출생했으며, 그가 정규적인 음악수업을 받은 것은 열덟살 때 피아노를 통해 재능을 가다듬으면서 부터라고 한다. 2년 후에는 트럼펫을 배우게 되었고 이 악기에 사로잡혀 주로 트럼펫과 함께 신간을 보내었다. 어린시절부터 부모의 관심속에서 음악을 공부하게된 컥크 맨지온은 그 고마움 때문에 앨범 "벨라비아"에서 그의 부모에게 바치는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고등학교 시절은 이스트먼 음악학교에서 트럼펫과 음악사를 전공하였으며, 다른학생 대부분이 대규모 밴드에서 일하는 반면 그는 동생인 피아니스트 갭 맨지온과 함께 5인조 밴드를 구성하였다. 계속해서 대학에서는 음악교육학을 전공하였으며 이때 처음으로 후루겔혼을 배우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는 로체스터의 한 국민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다가, 뉴욕으로 이사하여 1965년부터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가 처음 참가한 밴드는 아트 블레키의 재즈-메신저즈(Jazz Messengers)이며 2년동안 함께 일하면서 레코딩도 하게 된다. 그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척크 맨지온은 1968년 처음으로 자신의 4인조 밴드를 구성하게 된다. 이름은 이스트먼 재즈 앙상블(Eastman Jazz Ensembl)로써 이스트먼 극장에서의 첫번째 콘서트의 티켓이 매진되는 등 처음부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1972년에는 곤트리 재즈 훼스티발에 초청되었으며 유럽으로의 연주여행과 세장의 레코드를 출반하면서 실력을 점차로 인정받게 되었다.

척크 맨지온A&M레코드사로 이적한 것은 1975년으로 이때부터 그는 성공의 가도를 달리게 되며, 두번째 앨범 "벨라비아(Bellabia)"로 처음으로 그래미상을 받기도 하며, 스티비 원더, 칙 코리아,퀸시 존스 등과 함께 많은 음악상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척크 맨지온이 최고의 성공을 거둔건 역시 1977년에 선보인 앨범 "Feels So Good"이다. 이 레코드는 그에게 최초로 플라티늄 레코드를 안겨주었고, 인기차트 정상에 오르게 한다. 그는 그동안 8개의 앨범을 출반하였고 마지막 앨범인 "Tarantella"에서는 이탈리아의 지진 피해를 위해 노래하고 있다. 그는 8시간 동안의 자선공연을 하는 동안, 자신에게 음악을 가르쳐준 디지 길레스피, 칙 코리아 등과 함께 연주 했으며, 연주장에서는 이탈리아의 타란텔라춤을 추면서 음악과 평화를 함께 전하는 음악인 이였던 것이다.